우리가 김일성을 창의적이라고 부르지 않는 이유

새정부 출범 이후 가장 많이 들은 말 창조...그리고 창조경제

그 실체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의견을 내고 있고 명확한 규명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나도 지난 2년간 창조에 관한 교육과정을 기획하고 운영하면서 가장 많이 고민한 부분이다.

과연 창조적이다.

 

1. 창조적인 사람은 누구를 말하는 걸까?

 

먼저 '신과 천재만이 창조적인건 아니다.' 라는 결론은

심리학 측면으로 접근한 하워드 가드너 등의 심리학자들의 증명을 통해 밝혀졌다.

 

2. 일반인들은 어떤 특성을 개발해야 창조적이 되는 것일까?

 

그 때 내 눈을 번쩍이게 만든 것이 창의인성 이다.

최근 대한민국의 인성의 근간을 흔드는 기내 라면사건, N유업, 대변 사건 등

몇 가지 허탈한 웃음을 자아낸 일들로 인해 기본에 대한 생각 인성 교육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그리고 한 쪽에서 부각되고 있는 창의, 창조 Creativity.....라는 팬시한 단어이다.

이 단어를 들으면 멋진 디자이너가 떠오르고 화가, 예술가, 고차원적인 기술을 가진 과학자 들이 떠오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조금만 그 안을 들여다 보면 인성과 창조는 결코 따로 떨어져서 생각할 수 없다고 본다.

 

영화 다크나이트를 보면 선과 악은 반대편에 같은 개념을 가지고 있는 것들의 많다.

어둠 속에서의 창의는 같은 뜻이지만 다른 목적으로 활용된다.

배트맨은 선을 위해 싸워서 정당하지만 다크나이트는 악을 위해 싸워서 악당이다(?)

경찰은 선을 위해 폭력을 휘두르고 폭력배는 다른 목적을 위해 무력을 써서 나쁜 무리(?)

생각할수록 그 경계가 모호해 지는 것이 사실이다.

생각해 보면 '창의적이다.'이란 말과 비슷해 보이지만 그 반대편에 있는 말들이 많이 있다.

 

'교활하다.' '머리가 좋다..' '파괴적이다.' '수단이 좋다.'......등 등.

 

좀 오래된 이야기 이지만 노벨상의 뒷 이야기를 슬쩍 들춰본다.

 

노벨의 가장 큰 실수 : 다이너마이트 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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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프레드 노벨

( 1833-1896, 스톡홀름)

 

평화적인 목적으로 사용된

물질을 만든 사람에게

수여하는 노벨상 

 

아이러니하게 노벨은 다이너마이트를 만들고 큰 후회를 했다고 한다.

다이너마이트는 도로 건설, 무너진 탄광 뚫기 등 인류에게 많은 유익을 안겨주었지만 이것이 없었다면

전쟁에서 이로 인한 희생자도 줄어들었을 것이다.

 

다이너마이트는 1866년 알프레드 노벨이 최초로 발명한 폭발 장치이다.

이것은 당시 산업용으로 발명 되었지만 인간은 이를 전쟁용으로 사용했다.

 

1881년 러시아의 짜르 알렉산드르 2세는 폭탄의 희생자가 되었고 19세기 말

매일 평균 3건의 다이너마이트를 이용한 암살사건이 벌어졌다.

언론은 암살자들에게 Dynamitard라는 별명을 붙였다.

 

스웨덴에서 노벨은 군수물자 회사를 사들여 무기제조 회사를 만들었고

전쟁물자를 만들어 점점 더 부자가 되어았다.

 

그 시작은 인류를 위한 것이었는지 몰라도 인간은 그것을 다른 용도로 사용하게 된것이다.

 

노벨은 자신의 발명을 통해 일어난 끔찍한 일들을 보면서 자신의 연구가 인간을 위해 쓰이지 않고

인간을 해하는 것에 절망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의 유산으로 인류 복지에 가장 구체적으로 이바지한 사람에게 상을 수여하는

노벨상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원자폭탄의 개발은 창조적인 것일까?

인간복제 기술은 창조적이라고 할 수 있나?

 

우리는 이 질문에 자신있게 대답할 수 없다. 모든 훌륭한 발명품이 창조적이라고 할 순 없다.

인간을 향해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그 가치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우리는 북한의 전략과 전술을 보면서 감탄을 자아낼 때가 많다. 벼랑끝 외교, 버티기 기술 등

그리고 견고한 독재체제를 만들고 유지하는 김일성에게도 박수를 보낼만큼 감동 받을 때가 있다.

그러나 그가 만든 발명품은 창조적이라고 하지 않다.

국내 통신사의 광고가 우리의 가슴을 촉촉히 적시는 것도 그들의 메시지가 사람을 향하기 때문인다.

 

 

우리가 맹목적으로 창조적인 사람을 만들기 위해서 우아한 겉치레 만을 신경쓰면 안된다.

아무리 멋진 명품을 걸쳐도 티가 안나는 저주받은(?) 몸이 있듯이

인간의 본성을 바로 잡을 수 있는 철학에 대해 깊이 고민없이 만든 것은 창조적일 수가 없다.

 

우리의 자녀가 , 학교의 학생이

우리 회사의 임직원이 창조적이길 원한다면

인성에 대한 고민을 함께 시작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인간을 이롭게 하고 인류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가치를 탄생시키는 것 그것이 바로 창조이다.

 

Creativity for Human 

 

 

[Fresh SSong's Diary] 뎀비는 고객 대응방법

우리는 이중스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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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군가의 고객이 될 수 있고 또 어떤 고객을 상대하는 사람이 되기도 한다.

물건을 파는 판매원도 누군가에겐 물건을 사는 고객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고객은 참 대응하기 쉬울거 같으면서 어렵다.

나 자신이 고객이자 판매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잘 알수 있을거 같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많은 고객유형이 있지만 오늘은 '뎀비는' 유형에 대해서 생각해 보려고 한다.

 

2004년 3월 15일 매장으로 시간을 돌려본다.

 

대부분의 고객은 참으로 수동적이다.

 

 "어디한번 날 설득해봐~" 이런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막무가내로 그냥 사는 고객들이 있다.

그런 고객들은 판매하는 사람들에게는 Thank you!!

 

너 오늘 고객이 뎀비지?

 

고객이 뎀빈다는 표현은 우리 동수원점의 유일무이한 표현이다.  이 뜻이 무엇인지 궁금하리라

이 말은 내가 상담을 굳이 하지 않아도 고객이 알아서 그냥 '이거 주세요' 하며 쉽게 사간 다는 말이다.

우리는 고객이 일단 매장에 들어서면, 상담할 준비를 한다.

고객이 한 걸음 한 걸음 제품앞으로 다가 갈 때, 우리의 뇌는 소리없이 바쁘게 움직인다.

'어디에 필요한 거지?'

어떻게 다가가서 설명할까? 어떤 제품을 먼저 말해야 할까? '이러한 과정을 거쳐 고객을 판단하고 'Approach'한다.

이 과정 중 판단이 조금만 어긋나도 고객의 마음은 저만큼 달아나 버린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없이 고객이 알아서 성큼 성큼 걸어와 나에게 이거 그냥 주세요 하면 얼마나 이상적인가?

나는 오늘 선배들이 나에게 이런 말을 하는 것을 보고 정말 이상적일까? 하는 생각을 했다.

 물론 이렇게 하면 세일즈맨은 편하다 별도로 애써 설득 시키지 않아도 되고 힘이 들지 않으니 말이다.

이 상황을 다르게 생각 하면 후에 문제가 많이 될 수 도 있다.

고객은 자신의 잣대로 판단하여 물건을 이미 결정한 것이고 후에 물건을 사용할 때 조금이라도 자신의 기대와 다른 점이 있다면 곧 제품, 제조사에 대한 불만으로 이어진다. 이것은 매우 위험한 것이다.

따라서 뎀비는 고객에게도 세일즈맨은 제품에 대한 설명 및 타 제품과의 정확한 비교를 한 번 쯤 해주어야 할 것이다.

판매는 고객 접점의 순간도 중요하지만 접점 이후의 관리 역시 고객에게는 판매한 내가 그 중심에 있기 때문이다.

돌다리도 두들겨 보는 돌다리 세일즈 솔루션이 '뎀비는 고객'들에겐 꼭 중요한 처방전 이다. 

[Fresh SSong's Diary] Will you vs Can you buy?

'판매'한다는 것의 가치는 무엇일까?

기업의 목적은 이윤 창출이다. 그것은 명확하고 또 당연한 기업의 존재 이유이다.

기업의 녹을 먹고사는 나에게도 중요한 문제. ^^

 

그러나 오늘은 그 판다는 것의 의미를 생각해 보고자 한다.

 

2004년 3월 11일 매장에서 문뜩 든 나의 '판매'에  생각

 

시장경제에서의 富의 차이는 당연하다.

 

심지어 완전한 평등을 주장하는 사회주의 국가에서도 부의 정도는 차이가 난다.

그리고 그 차이에 따라 살 수 있는 능력이 정해진다.

 

나는 전자제품을 만드는 회사에 다닌다. 그리고 지금 나의 목표는 얼마나 그 제품을 많이 파는가에 집중되어 있다.

제조는 판매를 목적으로 하며 궁극적으로는 사람들에게 쓰여지기를 목적으로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생리상 물건을 파는 매장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은 물건을 살 수 있는 능력이 많은 사람을 좋아한다.

그리고 그러한 사람을 중요시 여긴다. 그것은 나쁜 것도 아니며, 잘못된 것이라고 할 순없다.

그러나 오늘 나는 두 가지 물음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당신은 물건을 구입 할 때,

 어떤 물건을 사는가? 를 고민하는지, 아니면, 살 수 있는가에 대해서 더 생각 하는가?

이 두 가지 물음에는 큰 차이가 있다.

 

전자는 살 수 있는 능력이 충분한 상태에서 물건을 살까 말까 고민한다.

그러나 후자는 필요한 물건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주머니를 먼저 걱정한다.

우리 매장에 오는 고객들 중에는 전자를 고민하는 고객과 후자를 고민하는 고객들로 나뉜다.

 

그럼, 우리 '판매쟁이'들은 이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

저녁 8시가 넘어서 마감을 준비하고 있을 때였다.

걸음조차 혼자서 힘들게 걷을 정도의 장애을 가진 젊은 남자 고객 한 분이 문을 힘겹게 열고 들어왔다.

나는 무엇이 필요하시냐고 물었고, 그 분은 포토샵을 많이 쓰니까 그거에 적합한 Note PC가 필요하다고 했다.

 

나는 지금 행사를 하고 있는 아카데미행사 모델을 중심으로 추천해 주었다.

그 고객은 애초부터 SX15를 맘에 들어 했는데 그 가격 때문에 구입을 망설이고 계셨다.

나는 무심코 이왕 하시는거 길게 생각하시고 좋은 걸로 하세요. 라고 말하였는데,

 

" 나도 좋은 거 사면 좋지요. 그런데 가격이 내 3달치 월급 이예요. 꼭 필요하긴 한데...."

 

SX15의 가격이 자신의 3달 치 월급을 꼬박 모아야 하는 가격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나는 모르고 있었다.

나는 제품에 대해서 이야기 하기 보다는 다른 것으로 화제를 돌렸다.

알고 보니 그분은 장애인을 위해 세운 전자 회사 직원이었다.

 

거기서 사진동호회를 열심히 하기 위해 홈페이지 구축을 위해 노트PC가 필요했던 것이다.

한 참을 고민 하시던 분은 이번주말에 다시 오겠다는 말을 남기시고 떠났다.

지금 내가 느끼는 부끄러움은 두 가지다.

 

살 수 있냐는 고민을 하시는 고객을 나는 단순히 살려고 들어온 고객으로 여기고 판매를 하기위해 계속 제품을 설명한 것

그리고 신체적 어려움을 극복하고 열심히 사는 분을 보면서 잠시 나마 실습이 힘들다고 투덜거렸던 나의 모습을 뒤 돌아 본다.


제조의 목적은 판매다. 그리고 만들어진 제품은 판매되어질 때 그 빛을 낸다.

 

그러나 판매의 가치는 그 제품이 꼭 필요한 사람,그 것으로 인해 삶이 조금 윤택해 질 수 있도록 도와 주는 일일 것이다.

 

여기에 우리의 존재이유가 있다는 생각이다.